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미가서는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배경으로 쓰였으며, 당시 앗시리아의 지배 아래에서 발생한 사회적 혼란과 약자들의 고통을 다룹니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면서 많은 주민이 남유다로 피난하거나 이주하였고, 이는 남유다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사회가 혼란스러워질수록 약자들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악인들은 그 혼란을 틈타 자신의 이익을 추구했습니다. 미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를 강하게 꾸짖습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욕망과 풍요를 우선시하는 태도로 이어지며, 이는 필연적으로 약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숭배하던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와 다산을 약속하는 농업의 신으로 보였지만, 이러한 우상숭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이익만을 좇게 만들었고, 모든 관계를 도구화하게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시하면 결국 사람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이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와 권력의 남용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미가는 불의와 우상숭배를 꾸짖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용서를 강조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본문에서 미가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깊은 바다에 던지실 분임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불의와 절망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
정치적 관심과 참여는 분명 중요하지만, 우리는 정치적 분노와 절망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불의에 대한 분노가 소망으로 이어지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비판하던 대상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의에 저항하며 정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앞으로도 신실히 우리를 이끄실 것을 믿으며, 감사와 기쁨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각자가 감사와 찬송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이웃을 축복하는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기도: 이 감사절 아침, 주님의 신실하심과 자비하심, 그리고 새롭게 하심 안에 우리의 소망을 둡니다. 모든 죄악을 멸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쁨과 소망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오늘 모이는 곳곳마다 주의 임재가 가득하고, 주의 영으로 채워 주셔서 감사와 찬송으로 서로를 세우고 격려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참고: 이 요약본은 AI 초안을 근거로 제작되었습니다.)
새벽기도회와 한국어 소그룹, 수요기도회, 그리고 개인의 말씀 묵상 자료로 사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