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장면을 목격하며 믿음으로 반응해야 했습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단순한 방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결단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확증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기준이나 선함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랑이며, 죄인을 위해 죽으시는 희생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이것은 단지 선한 사람이나 조금 더 나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가장 연약하고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런 무조건적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소망을 줍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민족, 계층, 직업, 신분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점에서 완전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그리스도인의 목표는 단지 천국에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더니 그 끝은 천국이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늘 결과와 과정이 함께 가며, 목적과 수단이 함께 갑니다.동행은 단순히 목적을 향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일설교: 세상에 드러나신 예수님
예수님의 세례 사건과 이민자 선조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이 결국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사실에 기초함을 깨닫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어떤 새로운 장이나 ‘주현’의 순간—개인적 삶이든, 교회 공동체이든, 더 넓은 문화적 맥락이든—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신다는 진리를 붙잡아야 합니다. 이 확신 위에서 우리는 유혹과 변화, 도전을 맞닥뜨리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충분하다”는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발람 이야기: 하나님을 도구화하지 말라
발락처럼 인간은 종종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이나 영적인 존재를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사랑은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요한 2서는 사랑과 진리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5절에서 사도는 "서로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단순한 감정적 표현이나 인간적 이해에 기반한 것이 아닙니다. 6절에서 그는 "사랑은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사랑이 하나님의 계명과 진리 안에서 실천될 때만 온전해진다고 말합니다.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성경에서 광야는 단순히 고난의 장소로만 그치지 않습니다. 광야는 하나님이 백성과 만나시고, 훈련하시며, 그들을 새롭게 하시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광야는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임재가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히브리서 2:9-18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를 깊이 설명합니다. 십자가 사건은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 고통을 겪은 것이 아니라, 인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인 죽음을 짊어지심으로써 완전한 구원을 이루신 사건입니다.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믿음의 성장은 우리의 거룩한 행위나 선행이 늘어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더 민감해지고, 그분의 섭리를 인정하며, 감사와 찬양으로 응답하는 삶이 참된 믿음의 본질입니다.
주일설교: 말씀의 생명, 빛의 영광
요한복음은 창세기의 첫 구절처럼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목적, 사랑을 담은 생명과 빛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질서와 목적을 부여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인간 또한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그 뜻을 실현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역대상 29장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준비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백성들도 기쁨으로 참여한 후 드린 감사와 찬송의 기도입니다. 다윗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자신과 백성이 드리는 헌신도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임을 고백합니다.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를 떠날 것을 아셨지만, 그들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연약함이 바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을 담당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가까이 나아와 들으라
우리는 말씀을 읽으며 기계적으로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거나 불확실성 속에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그의 뜻을 깨닫고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를 위한 기도에 있어서도 자녀의 삶의 성공과 성취보다 더욱 구해야 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일설교: 왜 포도원은 존재하는가?
포도원 주인은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한 시간 일한 사람 모두에게 동일한 품삯인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는 공평함을 넘어서는 은혜의 상징입니다. 이 은혜는 인간의 공로나 자격에 의존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타냅니다. 오후 5시에 불려온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감사와 기쁨으로 일했지만, 아침 6시에 불려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공로를 내세우며 불평했습니다. 이 차이는 은혜를 이해하는 깊이에 따라 삶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갈대 상자에 담긴 아기
모세가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띄워진 장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일상 속에서 작고 연약해 보이는 행동 가운데 이루어지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극적인 기적이나 명백한 표징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어머니가 작은 믿음으로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기고 갈대상자를 준비하는 그 ‘작은 실천’이 하나님의 큰 구원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그들이 먹고 마시매 놓아보내니
엘리사의 행동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불말과 불병거를 이미 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히 알고 있는 사람은 원수를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이 강하기 때문에 원수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했기 때문에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부르짖을 때에 들으소서
시편 27편은 외부적 환난과 내면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고,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은 그분이 인격적 하나님임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무관하게 역사를 돌리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친밀히 소통하시는 분입니다.
별을 보고 크게 기뻐하더라
동방 박사들이 별을 따라 예수께 온 이유는 단순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별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별이 인도하는 곳에서 인격적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 경배하고자 했습니다. 별은 단지 길을 인도하는 표식일 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별이 가리키는 대상인 예수님입니다. 박사들의 경배는 인간으로 오신 예수께 마음을 다하여 드린 인격적인 예배였습니다.
주일설교: 내 영혼 주 찬양하며
크리스마스 시즌은 종종 화려한 빛과 장식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성탄의 배경이 되었던 베들레헴은 정반대였습니다. 그것은 어둡고 소외된, 이름 없는 장소였습니다. 한 왕이 태어나기에는 가장 예상 밖의 장소였지만,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은 탄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화려한 곳이 아닌 가장 예상치 못한 곳에 임한다는 이 사실은 마리아의 찬가를 이해하는 배경이 됩니다. 그녀의 찬가는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며 그녀의 삶과 세상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의 변혁적 역사를 선포하는 찬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장 5절은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는 말씀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사람이 보게 된다는 이 약속은 하나님의 구원이 전 세계에 미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개인적, 공동체적, 사회적, 우주적 차원에서의 회복을 포함합니다. 그것이 대강절에 우리가 바라는 소망의 총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