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자신의 사명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새로운 선지자를 세우실 것을 예언하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선지자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것을 명합니다. 신명기의 이 예언은 궁극적으로 구약 성경 전체를 관통하며 다가올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주일설교: 불과 성령의 그리스도 나라
하나님 나라는 일상의 자리를 뚫고 들어옵니다. 세례 요한을 찾아온 사람들은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백성들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의 열매를 맺으라고 권면하며, 구체적인 일상 속에서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일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박한 사람들의 소박한 자부심과 자기만의 방식마저도 흔드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심판을 경고하시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은 회복입니다. 아모스서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세우고, 사로잡힌 자들을 돌아오게 하며, 황폐한 성읍을 재건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이 회복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와 평화(샬롬)가 온전하게 실현되는 새 사회를 가리킵니다.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다리오 왕은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이방 왕이었던 다리오의 입에서 나온 이 고백은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의 제국과 왕들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며, 세속 권세조차 그의 주권 아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행하신 대로 행했습니다. 병든 자가 고침을 받는 이 사건은 예수님이 시작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음을 증거합니다. 예수의 이름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회복의 역사를 나타냅니다.
주일설교: 섬기게 하리라
하나님의 긍휼은 그분의 나라의 중심입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자비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춘다고 강조합니다. 우리의 과거의 실패나 현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은 소망과 회복을 가능케 합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고 치유하시며, 섬김과 평화의 삶으로 부르십니다. 대강절은 우리의 연약함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긍휼을 기억하는 때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예수님은 나와 같은 죄인과 약자를 위해 오셨으므로 우리 역시 약한 자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오른편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을 행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들의 섬김이 삶의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의식적으로 기억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삶의 방식이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고백은 단순한 인간적인 고뇌를 넘어,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처음부터 끝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으며, 사명의 길에서 유혹과 고난을 겪으셨지만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우리에게는 "내 생각과 말이 하나님께 다 드러나니 어찌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시는 두려움이 아닌 따뜻한 사랑에 관한 다윗의 고백입니다. 5절의 ‘안수’는 축복의 상징입니다. 전지전능하시고 편재하신 하나님은 편재한 긍휼로 우리를 인격적으로 돌보시며 복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도망갈 곳 없는 사랑입니다.
주일설교: 깨어 있으라
대강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시기로, 교회력의 시작이며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까이 온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며,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 나라의 이중성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며 깨어 있으라는 교훈을 주십니다.
다니엘의 충성된 삶
다니엘의 삶의 중심에는 기도와 감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왕의 금령을 알면서도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 하나님께 무릎 꿇어 기도하며 감사드렸습니다(10절). 그것은 그의 정체성을 이루는 핵심이었습니다. 그의 정체성은 그의 직위나 타이틀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삶을 규정하고, 환경과 관계없이 그를 흔들리지 않게 한 근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변론하려 하노라
욥의 친구들은 그의 고난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했지만, 성경은 고난의 원인을 단순히 그렇게 정의하지 않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고 성숙하게 하시는 도구로 사용될 때가 많습니다. 욥의 이야기에서처럼 우리는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 질문하고 변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더 깊은 신앙의 성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미가는 불의와 우상숭배를 꾸짖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용서를 강조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본문에서 미가는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허물을 깊은 바다에 던지실 분임을 선포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불의와 절망 가운데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감사와 기쁨으로 살아갈 이유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