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주일설교: 성찬과 세상 속의 일
세계성찬주일을 맞아 오늘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성찬의 참된 의미를 가르치는 오늘의 본문 말씀인 고린도전서 11장을 근거로 하여 성찬의 깊은 의미를 세 가지 핵심적인 주제로 함께 살펴봅니다.
1. 그리스도를 높이는 성찬
2. 성도의 연합을 위한 성찬
3. 세상 속 선교를 위한 성찬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7편에는 그들이 겪은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는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는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그들의 과거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미래의 삶을 맡기는 것이 이 시편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10명의 정탐꾼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고, 그들 스스로를 "메뚜기"처럼 여겼습니다. 반면에 갈렙과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과 그분의 신실함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두려움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세상의 도전과 위협이 아무리 커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보고,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핵심입니다.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에 평강을 가져다줍니다. 이 평강은 우리의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원한 평강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이 놀라운 구속의 은혜가 바로 우리의 평강의 근거입니다.
슬기로운 자의 지혜는 자기의 길을 아는 것이라도
지혜로운 삶의 핵심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지혜로운 삶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삶은 단순히 이성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 이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스스로 파악할 수 없고, 우리의 판단이 때로는 불완전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기에 올바른 길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분리된 판단은 결국 잘못된 길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공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권력과 강대국들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앗수르의 교만하고 잔인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왔으며, 이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강대국이나 권력도 하나님의 권위 앞에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심판만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십니다.
겸손과 순종 - 나아만 장군 이야기
나아만이 종들의 권고를 듣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는 순간, 그의 나병은 완전히 나았고,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믿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병의 치유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했을 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요단에 들어서라 -믿음의 도약
성경은 요단강 사건을 홍해 사건과 연결시키며,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지도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홍해와 요단강 모두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기적이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믿음의 결단과 새로운 도약을 요구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는 성결의 은혜를 'Sanctifying Grace'라고 부릅니다. 구원의 은혜, 즉 'Saving Grace'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제 그분의 은혜로 거룩함을 향해 나아가는 성결의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은혜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속사람이 진정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
다윗은 인생의 덧없음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며, 새 창조를 이루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존재하는 기계적인 유기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고, 그분의 생명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기에, 우리의 삶에는 깊은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무의미한 세상에서 방황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가진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의 지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의 위대하심을 인정하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의 차이를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우리가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겸손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시고 이 창조세계를 완전히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고 바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향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작은 것들을 사용하여 그분의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우리가 가진 작은 것을 통해 일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큰 일에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 아모스의 경고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부유층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 약자들을 억압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무시한 채 자기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불의는 우상숭배의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우상숭배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욕망과 이익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인해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